시골에 사는 어느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상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전에 왔던 그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경찰 아저씨를 불러 딸집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 아저씨도 그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주소 대신에 ‘딸의 집 대문은 파란색이고, 지붕에는 검정색 고양이가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딸네 집이 서울에 없는 것이 아니며, 전에 그 집에 간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집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할머니의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소라고 하는 올바른 기준을 갖지 못하고, 자기 눈으로 본 파란 대문과 지붕 위 고양이라는 부정확하며 주관적이며 제한적인 생각을 통해 그 집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할머니가 계속해서 ‘파란 대문’과 ‘지붕 위 고양이’만을 고집한다면, 절대로 그 집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러한 할머니와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한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은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우리도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없게 됩니다. 하다못해 딸네 집 길 찾는 것도 주소라는 기준이 필요한데, 만일 우리가 영생의 길을 찾아간다면 더더욱 자신의 생각과 관점과 의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은 주소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주소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영생의 길을 찾고, 인생 의미의 길을 찾고, 구원의 길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저 세상으로 가는 길만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에서도 의미 있게 사는 길과 바르게 사는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그 길로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가 딸네 집을 잘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그 집이 분명히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며, 자신이 가진 집 찾는 조건(파란 대문과 지붕 위 고양이)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올바른 주소를 받아, 경찰이나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고,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분명히 우리를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과 내 생각과 계획, 방법을 내려놓고, 말씀이라는 올바른 주소를 받아,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가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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