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큰 칭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과 끝뿐 아니라 과정에 있어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잘했다 칭찬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합리적이야.’라는 말 속에는 그 사람이 믿을 만 하며, 그 행동이 말과 일치를 하며, 그의 말과 행동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다는 칭찬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에 비합리적이라는 말은 고쳐야 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이들에게 쓰는 말 중에 ‘문 닫고 나가라.’는 말은 합리적이지 않지요. 어떻게 문을 닫고 나갈 수가 있습니까? 문을 열고 나가야 하지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 의미를 서로 알고 쓰니 문제가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자신 안에는 비합리적인 사고와 그로 인한 행동이 많이 있습니다.

비합리적인 사고가 생겨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고와 판단은 옳아야 하는데, 항상 옳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한계가 있고, 결국은 ‘나’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요. 우리가 얻은 판단의 근거가 이미 우리 부모로부터 받은 제한된 교육이나 자신이 경험했던 쾌/불쾌한 일들로 인해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어느 주일 늦은 시간에 교회 주방에 갔더니 누군가 음식을 먹고는 치우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습니다. 비합리적 사고는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음식은 잘 먹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정리할 줄은 모를까, 치울 줄 모르는 사람은 아예 먹지도 못하게 해야 돼. 훈련 받으면 뭘 하나 이런 것 하나 지키지도 못하면서.’ 그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음식 먹고 나서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있었나 보다. 우리 교회는 언제나 이렇게 먹을 것이 있어서 감사하지. 내가 마음 불편해 하면 유익될 것이 뭐가 있나, 아 나도 전에 시간이 없어서 못 치우고 간 적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합리적으로만 생각해도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의 분쟁과 다툼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이 있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고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적 사고’입니다. 성경적 사고는 합리적 사고를 넘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위의 상황을 예를 들면, ‘교회에서 이렇게 봉사할 기회를 얻게 되니 감사하네, 하늘에서의 상급이 얼마나 클까, 내가 섬기는 제사장이라는 것을 주님이 오늘도 확인하게 해주시네.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 했으니 내가 교회 어른임이 분명해.’

합리적 사고를 하고 사십니까? 그것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사고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주고 격려하는 큰 어른들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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