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한 선교팀 멤버 3명이 불교 최대의 성지이며,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인도 보드가야에 위치한 마하보디 사원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모습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조롱을 받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종교인들의 웬만한 남다른 모습들은 금방 잊혀지는데, 이 일은 아직까지도 인터넷과 뉴스를 달구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슨 정신으로 그 먼 곳까지 가서 다른 종교인들과 충돌하고, 한국인의 위상은 물론이고, 교회의 위신까지 떨어뜨리는 일을 했던 것일까요? 분명히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했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러한 무모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자신들은 그렇게 적진(?)에서 기도하며, 찬양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자리를 덮을 것이며,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혹시 한 명이라도 예수님을 믿게 될지 모른다는 순진한 믿음으로, 어쩌면 순교까지 각오한 믿음으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모습은 얼마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부끄럽고, 무례한 모습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과연 몇 몇의 광신도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모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조금 믿음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뭔가 성령께서 자신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는 느낌(?)을 주셨다고 하면 이러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그리스의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우상숭배자들과 논쟁하는 모습을 생각하거나, 혹은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떠올렸거나,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예루살렘 시장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그러한 일들이 상시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예수님도, 바울도, 베드로도 동네방네 떠들며, ‘복음을 믿을래, 지옥갈래’와 같은 방식이 아닌,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구원하는 심정으로,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전도하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기독교의 배타성만을 더 심각하게 드러내어, 타종교인들은 물론이고,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기독교를 오해하고, 복음을 거부하게 하는 효과만을 많을 것입니다. 벌써부터 인도에서 수십 년 선교하신 선교사와 복음전도자들이 이 일로 인해 일어날 기독교 배타운동과 거부운동을 염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기독교는 엄연히 배타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모든 종교는 각자 나름대로 배타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배타성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포용성입니다. 우리가 가진 독보적인(배타적인) 믿음을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포용성 있게 전하느냐 하는 방법적인 면을 우리는 끊임없이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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