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것(Zachary K. Perkins)

다음은 Zachary K. Perkins의 글 “What Christians Get Wrong About Lent”를 번역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순절을 부활절을 기념하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하나님께 무언가 드려야 하는 기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부분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사순절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부활을 기대하던 경향이 더욱 컸다.

우리가 “사순절에 무언가 포기한다.”고 말할 때 보다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종종 “나는 하나님을 돕는 시늉만 할 거야.”를 의미하곤 한다. 그러나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부활주일까지의 기간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자아가 죽는 시간이다.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고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초점 맞추는 것이 우선이다.

‘사순절’은 봄을 위한 고대 영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인의 유월절과 관련이 있다. 사순절은 40일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지낸 40일,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보낸 40일을 반영한 것이다. 교회는 십자가의 서곡이 되는 신적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성경 속에서 이러한 시간을 기억해낼 필요가 있었다. 종려주일에 우리는 왕의 오심을 기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는 부활절 빈 무덤에서 종결된다. 사순절을 기념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에서 모든 금식과 축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온 몸으로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사순절은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음을 기억시키는 영적 절기이다. 신학자 그레고리가 “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오늘 나는 그와 함께 영광을 입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간 동안 금식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적게 가지려고 하고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마다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구제와 자선을 행해왔다. 우리가 거리로 나가 섬김과 긍휼을 베풀 때 세상은 사랑의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명확해진다.

풀턴 쉰 대주교는 “우리는 사순절에 잡초를 뽑는 것으로 악덕을 근절하거나 좋은 씨앗을 심는 것으로 미덕을 육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이상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명확합니다. 악의 흉악함이나 증오에 의해 위대하게 되지는 않지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정도에 의해서만 그렇게 됩니다. 금욕주의와 고행은 기독교인의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모든 것의 완성은 자비입니다. 참회는 우리를 향해 비추시는 하나님의 빛을 향해 우리의 자아를 개방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작아지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채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라고 하였다.

아무도 금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올바른 마음과 자세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쉰 대주교는 우리의 회개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이르게 한다고 말했다.

사순절은 무덤이 비워지고, 죄와 사망의 권세가 풀어졌다고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희망의 봄이다. 또한 슬프고 비통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희망의 봄이다. 금식하는 이 절기는 하나님의 해방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의 선포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러한 선물을 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한 희망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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